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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인보(1998년)서문 都有司兼 大同譜編纂委員長 23世孫 圭詢
무인보서(戊寅譜序) 都有司兼 大同譜編纂委員長 23世孫 圭詢 歷史는 사회발전의 기본이요 族譜는 鼻祖一根之身이 수억만 명의 後孫으로 分身하는 氏族의 歷史입니다. 무릇 族譜는 祖先의 昭穆을 기록하고 後裔들의 여러 계파를 바로잡아 세움이니 宗族을 모아 系派를 밝힘으로 合하면 全譜가 되니 각파를 합하는 것이며, 나누면 派譜가 되니 全譜에서 나누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全譜와 派譜는 大小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먼 宗族을 가까이 하고 흐트러진 宗族을 친절하게 연결하게 하는 人間의 道理로 치면 공통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거늘 무려 三○여년 만에 大同譜 編纂의 大歷史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삼가 序文을 쓰게 되니 다시없는 榮光이며 말할 수없는 기쁨이 앞섭니다. 우리 玉川(淳昌)趙氏는 高麗朝에 검교대장군 문하시중 諱 璋字로 族譜의 첫 上祖로 모셔왔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世代가 멀어지고 여러 번 겪은 國亂과 兵火로 인하여 各地各處로 흩어진 數를 헤아릴 수 없을 뿐아니라 南北分斷은 물론 時代의 變遷에 따라 一家親戚들은 四方八域으로 離散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系統이 혹은 전해오기도 하고 혹은 沈滯되기도 하여 族譜의 소중함을 等閑視한 사례가 적지 않았으며 急變하는 사회생활로 親族間의 相互訪問마저 끊겨 顔面은 있으나 同族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더욱이 行列과 寸數마저 모른 채 남 보듯 하는 예도 많았으니 실로 祖上께 罪悚한 일이요 한 血統을 이어받은 同族들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오래전부터 뜻있는 宗親間에 기회 있을 때마다 大同譜 編纂 관계를 論議하여 오다가 다행히 一九九七년 三월 二十八일 宗會에서 대동보를 편찬하기로 決議하고 대동보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본 업무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貫鄕의 호칭에 대해 玉川과 淳昌, 兩論이 분분하여 처음부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으나 어떤 氏族을 막론하고 先祖가 居住했던 鄉里를 貫鄉으로 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한 고증자료가 애매하여 論亂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一七○二년 壬午年 初譜序文에 「趙氏族譜趙氏之族也趙氏貫淳昌而爲望族者其來久矣有諱璋仕麗朝爲 檢校大將軍定爲我鼻祖四世而至諱元吉恭讓朝以定策勳封玉川府院君玉川即淳昌舊號也趙氏族譜는 趙氏 겨레의 世系와 派別을 記錄한 것이다. 趙氏가 玉川 또는 淳昌으로 貫源을 두고 望族되어온지 이미 오래이다. 諱 璋(장)께서 麗朝에 벼슬하셔서 檢校門下侍中을 하셨는데 진실로 우리의 시조가 되신다. 四世에 이르러 諱 元(자)吉(자)가 恭讓王때 王을 받들어 세운 功으로서 玉川府院君을 封하였고 玉川은 즉 淳昌의 古號이다」라고 記錄되었으며 一八九○년 庚寅譜 편찬시에 玉川으로 改稱한 기록을 확인했으나 개칭한 事由에 대해 考証될만한 문구마저 없음으로 불가피 차후 확실한 고증이 있을 때까지 貫行을 玉川(淳昌)이라 호칭하기로 滿場一致 決議되였습니다. 貫鄉 호칭에 대한 結論을 내림으로서 先代어른들께 罪責感을 容恕받고 宗親間의 葛騰을 解消하는 契機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우리 宗族들의 崇高한 精神과 돈독한 정신에 대해 높이 평가함과 아울러 거듭 致賀를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大同譜 編纂업무가 너무 莫重하고 廣範圍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부 족한 不肖로서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심히 念慮하였습니다만은 다행히도 任員들 또는 代議員과 宗親 여러분의 적극적인 誠援과 協助, 아낌없는 努力으로 漏譜됨이 없도록 각처에 흩어져 사는 宗族들을 廣搜探採하여 빠짐없이 수습하고 編輯이 이미 印刷단계에 접어드니 실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돌이켜보면 現代 文化文明은 急進的으로 發展해가고 產業經濟는 高度成長을 거듭하고 있는데 反해 倫理性과 道德性은 더욱 沒落되어가고 있는 이때 大同譜의 必要性과 重要性은 어느 때보다 절실한 宗族 모두의 認識이었습니다. 고러나 複雜多端하고 重且大한 대동보 편찬업무를 과연 누가 나서서 參與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多幸히 哲勳 君이 家事에도 不拘하고 犧牲的으로 業務를 관장하였고 任員여러분의 始終一貫 聲援과 協助에 힘입어 宗親들의 숙원사업인 대동보 편집 완성을 종친 여러분과 더불어 慶賀하면서 다시 한 번 聲援과 協助에 감사드립니다. 대동보 편찬을 계기로 우리 玉川(淳昌)趙氏 宗族들이 累代의 명문대가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새로이 하고 子孫代代로 친화단결 번영을 이뤄나가시기를 祈願합니다. 一九九八年 十二月 玉川(淳昌)趙氏都有司兼大同譜編纂委員長 二十三世孫 圭詢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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